3월 호법법회(3/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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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정사 소식

3월 호법법회(3/4,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3-04 15:46 조회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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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호법법회가 스님들의 인례로 여법하게 봉행되었습니다. 매월 첫째주 수요일 봉행되는 호법법회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법을 보호하고 생활속에 실현하는 호법의 의미를 되새기며 봉행되는 법회입니다. 

 

벽암 지홍스님의 오늘 법문 주제는 "업(業)을 다스리는 삶"입니다.

 

 

"선한 인연에 선한 결과가 있고 악한 인연에 악한 결과가 있다."했다. 

인연으로 얽히고 설킨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업은 삶을 규정하는 현실이 된다. 

우리의 삶의 밑바닥에는 스스로 지은 업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 법회보 中 - 

 

사회는 지승거사님께서, ppt봉사는 무구행보살님께서 수고해 주셨구요.

밖에서는 일우거사님의 차량봉사와 움직이는 가피봉사도 이어졌습니다.

하안구 식구들은 점심공양 배식봉사를 해주셨구요. 어제 대보름 부럼을 오늘도 나눠 드렸네요^^ 


법회의 원만봉행을 위해 수고해 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와 찬탄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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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業)을 다스리는 삶


                        벽암 지홍스님


선한 인연에 선한 결과가 있고 악한 인연에 악한 결과가 있다.했다. 인연으로 얽히고 설킨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업은 삶을 규정하는 현실이 된다. 우리의 삶의 밑바닥에는 스스로 지은 업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농부는 농사지어 수확하게 되면 우선 내년 농사에 쓸 실한 종자부터 골라 놓는다. 봄이 되면 그 씨앗은 땅에 뿌려지고 수분, 공기, 온도 등 외부 조건들이 순조롭게 되면 싹이 돋고 꽃이 피어 훌륭한 열매를 맺는다. 사람 사는 일 또한 이와 같은 이치다. 현실에 발 딛고 서서 행복의 씨앗인 선인善因을 심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들 삶이다. 삶이 아무리 버겁고 고달프더라도 그 안에는 행복이 깃들어 있다. 진실한 삶의 자세로 현실에 바르게 설 때 지난 죄업은 소멸되고 좋은 인연은 찾아드는 것이다. 동체대비同體大悲의 큰마음으로 쌓아온 지난 억겁 전생의 선업, 그리고 6년 고행으로 이룬 부처님의 세계는 악업의 소멸이다. 악업이 다한 그 자리에 청정한 복과 덕을 원만히 갖춘 부처님이 계신다. 부처 되길 서원한 사람들 또한 스스로의 삶을 제한하고 있는 악업을 제거해 가는 수행을 멈출 수 없다. 


 깊은 인연으로 관계 맺어진 가족은 하나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공동운명체이다. 눈비가 몰아치는 궂은 날이나 따사로운 햇살이 부서지는 화창한 날이나 조건 없는 사랑으로 함께 한다. 다소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더라도 사랑과 신뢰로 탁마(琢磨)하면서 서로가 닮아 가는 것이 가족이다. 좋은 남편 좋은 아내가 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악업은 소멸되고 복된 삶이 이루어진다. 가족들 모두가 지은 업은 물론 우리 민족의 삶(행위)의 결과인 역사,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이 지은 업(共業) 모두는 우리가 감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된다. 어려워진 경제여건, 삭막해진 마음들 그리고 황폐한 자연환경이 잘못 살아온 지난 삶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행복도, 업의 소멸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어찌 못할 현실이기 때문이다. 격랑과 해일 속을 항해해야만 하는 배(船)에 있어 튼튼한 돛과, 바람과 바다를 이해하고 있는 훌륭한 항해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인생에서 당당히 홀로서기 위해서도 현실(業)을 바르게 이해하는 지혜의 안목은 필수적이다. 현실에 바르게 천착(穿鑿)함으로써 스스로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 발 밑에 구르는 매끄럽게 다듬어진 돌 하나에서도 세월의 풍상과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업에 따른 삶의 유전도 그러하다. 나의 모습, 나의 조건과 환경 등 지금 여기 있는 내가 바로 오랜 세월 쌓아온 업의 결과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하는 속담처럼 한치도 속일 수 없는 것이 인과의 이치이다. 나의 업에 따라 올 것이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떠나가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돈도 사랑도 명예도 모두가 그러하다. 


  옛날, 한순간에 집안이 몰락하여 거지가 된 청년이 있었다. 전생의 어떠한 죄업 때문인지 이 거지는 박복하기 짝이 없었다. 동냥을 다니면 밥을 얻기는커녕 몽둥이 찜질을 당하거나 개에게 물리기 일쑤였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남의 집 쓰레기 더미를 뒤져 먹을 것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삶에 염증을 느낀 그는 결심했다. 


  나의 운명은 어찌 이다지도 기구한가 가장 밑바닥 인생인 거지로 전락하고서도 모자라 밥 한 그릇 얻어먹지 못하고 쓰레기 더미를 뒤져 연명해야 하다니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그는 마을 뒷산으로 가서 밧줄로 올가미를 만들어 소나무 가지에 묶었다. 그리고 올가미에 목을 매려는 순간, 갑자기 허공 속에서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놈! 너는 쓰레기 열 포대를 먹을 업을 지은 놈이다. 어찌 세 포대밖에 먹지 않고 죽으려 하느냐!” 아직 일곱 포대의 쓰레기를 더 먹어야 하니 죽을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환청과도 같은 허공의 소리에 거지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어차피 열 포대의 쓰레기를 먹어야 할 운명이라면 빨리 찾아 먹자.’ 그 날부터 거지는 자신의 운명은 조금도 탓하지 않고 열심히 남의 집 쓰레기 더미를 뒤져 먹을 것을 찾았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나머지 일곱 포대 중 한 포대 분을 채 찾아먹기 전에 거지는 우연히 만난 귀인의 도움을 받아 전처럼 잘 살게 되었다. 거지가 쓰레기를 주워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나머지 일곱 포대의 업이 녹아버린 것이다.


  얕게 흐르는 작은 냇물에도 여울목이 있기 마련인데 사람 사는 데에 역경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평소 괴롭고 힘든 일이 닥치면 그동안 쌓은 업을 소멸하고 좀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질 않은가. 참고 견디는 가운데 인욕을 배워야 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스스로의 지은 업을 정화해 가는 삶은 언제나 겸허하고 평화롭다. 거기에는 스스로 지었기에 스스로 벗어날 수도 있다고 하는 역동적인 생의 의지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천근같은 무게로 짓누르고 있는, 미궁 속 같은 현실(業報)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해야 한다. 

 

업의 정화, 거기에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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