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호법법회(4/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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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정사 소식

4월 호법법회(4/6,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04-06 13:32 조회3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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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이 완연한 4월의 첫째주 수요일 아침, “청정사찰 실천지침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임인년 4월 호법법회를 봉행합니다.

중앙승가대 수행관장 동명스님께서 [ 아무리 좋은 곳일지라도안주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주제로 우리가 닮아야 할 부처님의 덕목에 대하여 법문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법을 보호하고 생활속에 실현한다는 호법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며, 불법이 영원히 이 땅에 머물고 이 세상에 꽃피어 온 중생과 세계에 부처님의 무량공덕이 충만하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법회에 참석하지 못하신 불자님께서는 유튜브 온라인 동영상 법문을 통하여 함께해 보시길 바랍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동명스님의 온라인 동영상 법문 : https://youtu.be/XMe6A4IyL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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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호법법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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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명스님의 법문이 있는 호법법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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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안구의 점심공양물 나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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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피지킴이 - 

 아무리 좋은 곳일지라도‘안주하지 않겠습니다’

중앙승가대 수행관장 동명스님

저는 우리가 닮아야 할 부처님의 덕목을 일곱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원력으로 살자. 둘째, 어떤 것에도 안주하지 말자. 셋째, 모험하고 도전하는 것에 주저하지 말자. 넷째, 자비심을 갖자. 다섯째, 성실하게 살자. 여섯째, 알아차림을 실천하자.
일곱째, 내려놓음을 실천하자.
 

집에서 사는 생활은 비좁고 번거로우며 먼지가 쌓인다.
그러나 출가는 널찍한 들판이며 번거로움이 없다. (숫따니빠따 406송)
 

부처님 생애를 한 글자로 쓰라고 하면 저는 ‘길’이라고 쓰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실로 길에서 태어나셔서 길에서 노인과 병자와 죽은이와 출가사문을 만나신 후 출가를 결심하셨고, 안락한 집(궁궐)을 버리고 길을 떠나셨으며, 6년 동안 길에서 수행하셨으며, 길에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45년 동안 길에서 교화하시다 길에서 열반하셨습니다.
 
길의 상대어는 집입니다. 우리는 밤중에 편안하게 쉰 후에 아침이면 집을 나섭니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우리 앞에는 길이 나타납니다. 집은 안정되어 있지만, 길은 불안합니다. 불안한 길을 이리저리 돌아서 직장에 도착하면 불안하던 마음도 안정됩니다. 물론 직장이 집보다 편안하지는 앉지만 직장도 또하나의 집이라 하겠습니다. 퇴근시간이 되면 직장에서 나와 기나긴 길을 통과하여 집으로 옵니다.
 
우리의 일상은 이렇게 집과 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쩌면 길은 편안한 집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편안한 집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집에서 또다른 집으로 빠르고 편하게 가기 위해, 집이라는 장소를 편안하면서도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길은 다양하게 변화합니다.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하고, 자동차 길이 되기도 하고 산책로가 되기도 하고 바닷길이 되기도 하고 하늘길이 되기도 합니다.
 
집은 어머니의 자궁을 본따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편안한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머니의 자궁이 편안하다 하여 언제까지나 머물 수는 없습니다.
생명체로 태어난 이들은 언젠가는 어머니의 자궁을 떠나야 합니다. 자궁을 나오는 길이 무척 힘들 듯이 집을 나오는 길 또한 힘듭니다.
집은 개인에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재산’입니다. 얼마나 큰 집인지, 얼마나 좋은 집인지, 얼마나 비싼 집인지가 재산의 척도가 됩니다. 부처님께서 집을 떠나 길을 나섰다는 것은 무소유의 삶을 택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집은 또한 집착의 상징입니다. 집에는 나를 보호해줄 사람, 내가 보호해줄 사람이 함께 삽니다. 그들을 가족이라 말합니다. 가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각종 물건들을 소유하게 됩니다. 가족들의 안녕을 위해, 소유의 안정을 위해 우리는 일에 집착하고 학업에 집착하고 관계에 집착합니다. 길은 ‘험난함’의 상징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길에서 태어나셔서 평생 길에서 교화하시다가 길에서 열반하셨으니, 이른바 ‘동양철학’을 하는 분들에게 부처님의 사주를 들이대면 평생 고생만 하다가 객사할 운명이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나 평생 길에서 교화하고 길에서 열반에 드는 삶을 결코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삶을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선택하셨고, 그 삶 속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행복하셨습니다.
안정된 환경 속에서 전법 교화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 부처님 같은 그릇이 되지 않는 분이 부처님처럼 ‘험난한 길’을 가다 보면 오히려 자신의 장점마저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저는 스스로 다짐할 뿐입니다. 편안한 환경에 안주하지 않고 저 나름대로 ‘불자의 길’을 꾸준히 걷겠습니다. 여기서 불자의 ‘길’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생각해봅니다.
 
첫째, ‘길’은 편안한 집에 안주하지 않는 삶을 상징합니다. 널찍한 들판은 바람도 막아주지 않고 추위도 막아주지 않고 눈보라도 막아주지 않지만,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선사합니다.    둘째, ‘길’은 밖으로 활짝 열린 진취적인 자세를 상징합니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길은 세상 모든 곳으로 연결됩니다. 길을 지향한다는 것은 세상 모든 곳을 향해 열린 진취적인 자세를 견지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 ‘길’은 도전과 모험의 상징입니다. 집안에 있으면 내가 접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지만, 길을 떠나면 세상의 모든 가능성이 활짝 열립니다. 넷째, ‘길’은 집착을 버림을 상징합니다. 가족에 대한 집착, 재산에 대한 집착, 권력에 대한 집착, 명예에 대한 집착, 안락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물질의 소유에도 집착하지 않는 이,/ 시간에 매이지 않고 집착에서 벗어난다면/ 그가 바로 최고의 계급 바라문이다. ( 법구경 421송)

이제 저는 다음과 같이 다합니다. 첫째, 안주하지 않겠습니다. 굳은 결심으로 출가했지만, 출가 생활 가운데도 그냥 안락하게 안주하고 살 기회가 옵니다. 길에서 태어나셔서 길에서 열반하신 부처님의 제자로서 그때마다 ‘안주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웁니다. 둘째,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자세로 살겠습니다. 사람이 안락해지면 보수화되기 쉽습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부처님의 태도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열린 자세이셨음을 상기하고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자세를 유지하겠습니다. 셋째, 도전하고 모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꼭 성취해야 할 일이 생기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고 끈기 있게 추진하겠습니다. 넷째, 이미 가진 것,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가진 것, 누리고 있는 것이 영원하지 않으며 헛된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기에 아무리 훌륭한 것일지라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옷 한 벌 밥그릇 하나로 / ‘조주의 문’을 드나들었네
천개의 산의 눈을 다 밟고 나서야 / 돌아와 흰구름에 누웠네
一衣又一鉢 出入趙州門 踏盡千山雪 歸來臥白雲
-벽송 지엄(碧松智嚴, 1464~1534), [의선소사에게(示義禪小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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