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일) 불교를 만나서 다행이야-석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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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의 멸종위기에서 배우는 붓다의 가르침
불광사 교무 석두스님
지금 바나나 재배지역의 곰팡이균 감염으로 인해 바나나가 우리의 식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어릴 적 귀한 과일의 대명사인 바나나의 명성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런 뉴스가 염려되고 낯설기만 하다.
낯설다는 것은 내 좁은 소견으로는 병이란 생길수도 있지만 병원균에 대한 항체의 형성으로 저항력도 생기는 법인데, 왜 이놈들은 속절없이 동시에 당하기만 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뉴스의 내용을 들여다보니, 나는 새삼 부처님의 깊은 혜안의 가르침에 감사드리게 된다.
이놈들이 이렇게 속절없이 당하는 것은 품종의 다양성이 없기 때문이였다. 즉, 개체의 다양성이 때로는 부정적인 모습으로는 생존에 필요한 양분의 쟁탈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으나,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보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부처님의 가르침이 지금의 상황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중생들은 중생의 업식으로 대상을 판단하고 속단한다. 중생의 업식은 원융한 융합의 의식이 아닌 대상을 나와 분별하여 판단한다. 분별한다는 것은 나와 별개로 상정하고 나와는 깊은 연관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편리대로 대상을 조작한다. 품종의 단일화?????
이것은 전적으로 식물 개체의 입장이 아닌 전적으로 인간의 의도적인 편리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유전자가 조작된 옥수수가 그렇고, 얼마 전 유전자가 조작된 슈퍼돼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미자]가 그렇다. 부처님은 중생들의 인식이란 것의 허구성에 대해 늘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신다.
인식의 허구성이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존재의 한계성을 말씀하신 것이다. 즉 우리는 우리가 욕망한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조작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세상을 한 번도 의심의 눈초리 없이 보아왔다. 내게 불편한 것은 늘 고치고 바꾸어야 하는 대상이고, 나는 그리하여 안락과 편안함을 추구한다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대상을 변화시킴으로써 세상은 많이 발전한 듯 보인다. 나도 편리한 세상을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말 그럴까?
자동차로 인해 우리의 생활권은 확대 되었으나, 매연과 미세먼지로 고통 받고, 오존층은 점차 사라져 자외선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되고 있으며,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대인에게 또한 비만과 당요와 같은 많은 현대의 질병을 야기 시키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는 문명을 과거로 회귀시키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적이 아닌 인위적인 것,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 낸 욕탐의 결과임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런 욕탐의 결과물이 만들어낼 부작용에 어느 정도는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바라보고 지켜봐 주는 힘은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 불제자들이 늘 잊지 않고 삶 속에서 실천하려 애써야 하는 수행의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다.

<매월 2째주 일요법회는 올 1월부터 불광사 교무 석두스님을 모시고 봉행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두번째로 70여명의 대중들이 동참한 가운데 여법하게 봉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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