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7일 호법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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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7일 호법법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3-07 16:08 조회1,8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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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7일 호법법회가 동일스님의 법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공양봉사는 소하구법등에서 수고해주셨습니다.

마하반야바마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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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집착을 내려놓아야 행복합니다. (법문:동일스님)

“출생으로서 천민이 되는 것이 아니고, 출생으로서 바라문이 되는 것이 아니다. 행위에 의해 천민이 되고,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된다” 《아함경》에서 부처님께서는 계급 신분이 철벽같이 쳐있던 인도 고대시대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현재의 나의 행위가 일체를 결정하는 것이지 계급이나 출신 성분에 의해서 천하거나 귀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행동으로 자기를 실현하며 자기를 형성해 갑니다. 그러므로 필경 행위로써 성인도 되고 범부도 되고 오늘의 성공도 미래의 행복도 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복되고 성스러운 행위를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타인과는 완전히 별개인 고정불변의 ‘나(我)’가 있다고 보아 그 ‘나(我)’에 집착하는 자아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그 ‘나(我)’에 대한 집착은 끝이 없으며, 결국 그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한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관념이든 물질이든 무엇인가에 집착할수록 진리에서 멀어집니다. 특히 ‘나(我)’에 집착할수록 행복과는 동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세상 모든 존재와 현상들속에 ‘나(我)’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아(無我)입니다. 내 안에 ‘나(我)’라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의 의식이 있을뿐이고 그 의식은 단순한 감각에 불과할 뿐입니다. 실제로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의식(관념)이든 물질이든 연기적인 상호관계속에서 존재합니다. 곧 ‘너’가 있음으로써 ‘나’ 또한 존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너와 나, 물질과 관념 등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상호 의존관계에 의해서 서로 존재하는 것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상속에서 우리는 뭔가를 볼 때에도 그냥 보지 않습니다. 본인은 알아채지 못할지 모르지만 이미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을 엄연히 구분하여 보고있습니다. 평소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풀거나 절에서 봉사하고 기도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나(我)’를 의식하면서 ‘내가 한다’, ‘이런 것을 하는 내가 자랑스럽고 칭찬받아 마땅하다’, ‘이것이 나에게 큰 이익이 되겠지’ 라는 자아의식을 갖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거나 이익을 얻지 못할 때 섭섭한 감정이 일어납니다.

이렇듯 ‘나(我)’에 대한 집착과 착각속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의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너’ 없는 ‘나’ 혼자만의 삶은 결코 성립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행복할 수 있으려면 ‘나(我)’ 뿐만아니라 ‘너’도 행복할 수 있었을 때 진정한 나의 행복도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너에게 베푸는 나의 친절은 결국 나에게로 향한 친절인 것이며, 우리 모두의 행복을 향한 복되고 성스러운 행위로 연결되는 기도이고 수행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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