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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7일 일요법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6-17 15:45 조회1,8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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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행복 (총무 동민스님)

살다보면 적어도 한번쯤은.....
‘산다는 게 뭐지…?’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걸까…?’
‘무얼 위해 살아야하나…?’
‘죽어버리면 그만인데 아둥바둥 살 이유가 있나…?’

온갖 세상사를 세 치 혀로 풀어내는 사람들은 많지만, 삶의 의문에 대한 시원한 대답을 듣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지향하는 삶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막연하지마는 누구를 막론하고 괴로움보다는 즐거운 인생을 바란다는 것에서 공통된 삶의 지향을 엿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를 ‘행복’이라고 이름붙이고, 그것을 찾아나서는 일에 사람들은 주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행복을 찾아 나선다는 것 자체는 ‘지금 나는 행복하지 않다’는 현실적 자기 진단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 행복을 바란다면, 행복을 찾아나서기 전에 ‘왜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부터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는 행복하기를 갈망합니다.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고, 바로 '오늘' 말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을 부르면 ‘제7말라식’이 소멸된다고 합니다. ‘말라식’은 7번째의 식(識)으로, 망령된 식일뿐 실제로 있는 게 아니라는 뜻에서 별명이 ‘망식(妄識)’입니다.

우리 몸에는 대상을 인식하는 5개의 감각이 있습니다. 그것이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이죠. 이것들은 앞에 나와 있다고 해서 전오식(前五識)이라고 부릅니다. 이 앞에 나와 있는 5가지의 식을 통합하는 것이 제6식인데 그것을 의식(意識)이라고 합니다.

의식은 혼자 작동하는 게 아니어서, 실제 의식을 조정하는 것은 ‘제8아뢰야식’인데, 중간에서 제7말라식이 홀연히 나타나 장난질을 합니다. 망식은 한마디로, 있지도 않은 ‘나’라는 것을 자꾸 고집하는 식(識)입니다. ‘나는 어떻게 하고, 나는 잘 살아야 하고, 나는, 나는...’ 하는 그것이 나의 업을 만들어갑니다.


나를 남들과 대립시키고, 남들하고 대립한 가운데서 악업을 짓게 하는 근본원인이 바로 이 제7말라식에 있어요. 그래서 망령된 식인 이 제7말라식을 소멸시켜야 하는데 제7말라식을 ‘내 힘’으로 소멸하려고 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마음속에 있는 놈을 마음속에서 없애려고 하니까 다시 대립이 일어나죠. 그러니까 효과가 없습니다. ‘내가 말라식을 소멸시키겠다.’ 다시 말해서 ‘나’라는 주장을 ‘내가’ 없애겠다고 하니 헛수고가 되는 겁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없애는 것이죠. 그런데 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내가’ 없애겠다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 마음이 바로 아상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 마음속에 아상이 일어나니까 그 아상을 없애겠다는 아상이 또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아상을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아상이 없어지지 않으니까 인상은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중생상 즉 남들과 다투는 생존경쟁의 세계가 내 앞에 전개되는 겁니다.

이런 모순을 잘 이해하면 ‘마하반야바라밀’라는 법문이 나오게 된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의 원력에 의지하라는 말이죠. 이 말은 참생명이며 무한광명 무한생명이 나에게 힘을 발휘하게 되니까 그 힘으로 제7말라식이 ‘나’라는 주장을 못하게 되는 거죠. 그 마음이 행세를 못하는 겁니다. 금강정사 형제들은 어제나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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