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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각스님 초청법회(7월22일 일요법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7-22 14:34 조회1,9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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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다 (공생선원 선원장 무각스님)

지금 일어나는 한 생각이 내 삶을 결정한다.
일상 속에서의 수행이 가장 빠른 마음공부의 길이다.


우리는 모두 완전한 사랑, 완전한 행복, 완전한 자유를 바랍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해탈과 열반이라고 합니다. 해탈은 완전한 자유를 말하고 열반은 완전한 행복, 완전한 상태입니다. 불자뿐 아니라 일체중생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입니다. 해탈과 열반을 위한 수행의 방법 중 참선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참선이라고 하면“관觀하고 화두를 들고 집중하여 용맹정진으로 뚫고 들어가라”는 따위의 고담준론으로 대부분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불자들과 첫 발걸음을 떼는 일반인들을이 선禪에 관심은 많지만 어렵다는 생각에 선뜻 다가서지 못하곤 합니다.

산중 사찰이나 선원에 가지 않더라도, 누구든지 자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언제 어디에서나, 선 수행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방법, 즉 일상 생할이 그대로 참선 수행의 재료가 되고 길이 될 수 있는“마음의 쉼, 곧,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법” ‘스스로 마음을 믿고 마음에 맡기는’것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쉬게 하고, 그 마음에 맡기면서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의 간절함으로 깊이 몰입하는 것이 참선을 잘할 수 있는 과정입니다. 그러다 보면 생활하는 중에 부닥치는 일상의 난관들도 저절로 잘 해결할 수 있게 되며,“행복하게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모두 마음 쓰기에 달려 있고, 지금 일어나는 한 생각이 자기의 삶을 결정한다”는 지혜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마음 공부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쉼 없이 한순간도 놓치지 말고 젖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법문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젖어들면 가장 편리하고도 부드럽게 공부에 들어갑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부처님 법문으로 온통 젖어 있다는 말이지요. 온몸이 비에 푹 젖었을 때 누르면 물이 배어 나오듯이 법문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 공부가 일상화되어야 합니다.

생활을 떠나서 불교가 존재할 수 없으니,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아야 합니다. 삶을 떠나서 진리가 따로 존재할 수 없으니 우리의 삶 그대로가 불교의 위대한 가르침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대로 진리의 표현임을 깨달아 가야 합니다. 내가 불 하나 켜면,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모두 밝게 살 수 있듯이 말입니다.

마음을 관觀하는 것은 마음이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순간순간 알아차리고 자각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마음 작용, 일체의 경계, 순경계, 역경계, 생각 생각을 또 다른 마음이 놓치지 않고 주시해 보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올라오는 생각을 지켜보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곧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여실히 알고 마음이 어떻게 나가고 있는지 보는 것입니다.

한편, 참선을 하는 수행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쏠림현상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을 경계하며, 재가 불자나 출가자 할 것 없이 일상의 삶이 수행의 근본임을 늘 되새겨야 합니다. 옛 선사들이 그러했듯이, 늘 초심으로 돌아가서 자기의 수행을 점검하는 “스스로 마음을 믿고 맡기는” 마음 쉼이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참 나”를 알아야 불교를 제대로 알고 참선도 주저함 없이 올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선禪은 내가 부처임을 알고 부처로 사는 것”으로, 오래 전에 임제 스님이 가장 수승한 수행이라고 역설하였듯이, “바른 안목(眞正見解)” 즉 자기 자신의 안목에서 벗어나 자기라는 틀을 벗어버리고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부처로 살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중생이 이미 제도되어 있는 완전무결한 부처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정견은 내가 누구인가 아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본래 부처입니다. 나타나는 현상이 연기이고 실체가 없고 공이라는 사실을 알고 내가 본래 진리임을 자각하는 것이 바른 안목, 정견正見입니다. 정견은 자기 마음 가운데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갖춰져 있는 바른 안목에 의지하면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살고 생각도 바르게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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