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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3일 초하루법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7-13 13:28 조회1,8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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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念佛)수행에 대하여 (법문: 동일스님) 

부처님과 보살들의 명호(名號)를 염(念)하는 것을 모두 염불(念佛)이라 한다. 염불이란 말 그대로 부처님이나 보살님의 이름과 모습을 끊임없이 마음에 집중함으로써 번뇌와 망상을 없애 깨달음을 이루고 불국정토에 왕생하는 수행방법이며 평소 염불을 꾸준히 하면 저절로 마음이 안정 되고 환희심이 생기는 가장 손쉬운 수행방법 중 하나이다.
부처님에 대해서 존경하는 마음의 작용, 수행하려고 하는 마음의 작용 등이 칭명(稱名)과 염불(念佛)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정각(正覺)을 성취한 부처님이 법륜(法輪)을 굴려 중생에게 큰 이익을 주었기 때문에 중생들이 부처님을 마음 가운데 간직하고 생각하는 것이 염불이다. 따라서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으로 염불기도를 하게 되면 언제나 부처님의 위신력과 가피가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이 끊이지 않아서 스스로의 마음에 평온을 되찾게 된다.
염(念)에는 관념(觀念), 심념(心念), 사념(思念), 억념(憶念), 칭념(稱念) 등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법신불인 부처님을 생각하는 법신염불,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는 관념염불, 부처님과 보살님의 명호를 입으로 부르는 칭명염불이 있다.
염불을 할 때는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일념으로 해야 하는데 예로부터 큰소리로 하는 고성(高聲)염불을 권장해 왔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각자 상황에 맞게 알아서 하면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량없는 일심으로 입으로 부르기보다는 마음으로 부르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일체의 잡념이나 생각이 없이 오직 부처님을 향한 마음으로 큰 서원을 세우고 정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큰소리를 내서 하는 고성염불에는 다음과 같은 열 가지 공덕이 있다. 먼저 수면이 없어지고, 천마가 두려워하고, 염불소리가 주위에 널리 퍼지고, 삼악도의 고통을 없애고, 잡다한 소리가 들어오지 못하고, 염불하는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용맹스런 정진심이 나오고, 제불이 기뻐하며, 삼매력이 깊어지고, 정토에 왕생하게 된다. 염불의 기원은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암기하여 외우고 낭독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함경》 등에 보면 삼념(三念), 오념(五念), 육념(六念), 십념(十念) 등이라는 말이 자주 보이는데 염불(念佛), 염법(念法), 염승(念僧), 염계(念戒), 염시(念施), 염천(念天), 염휴식(念休息), 염안반(念安般), 염신(念身), 염사(念死)의 열 가지 수행법을 십념(十念)이라 한다.
초기불교에서 염불은 이 십념중의 하나였고 이때의 염불은 지금과 같이 불보살님의 명호를 부르거나 생각하는 것보다는 불보살님의 공덕이나 모습 등을 마음속으로 떠올리는 것을 주로 의미했었다. 그 후 부파, 대승불교가 출현하면서 타방의 여러 부처님이 출현하고 불보살들이 등장하였다. 따라서 여러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것을 모두 염불이라고 하게 되었다.
염불의 가장 초기 모습은 부처님 당시에 제자들이 교단에 입단하면서 외우는 삼귀의 의식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이 수행방법으로 발전하여 삼념(三念)이라든가 육념(六念), 혹은 십념(十念)등으로 진전되어 염(念)하는 공덕에 의해 생천(生天)이라고 하는 득과사상(得果思想)으로 발전하여 후대에 정토종의 아미타부처님을 염하는 공덕에 의해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정토사상으로 정립하게 되었다.
정토신앙은 부처님의 본원에 의지하여 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신앙으로, 기원 후 1~2세기에 걸쳐 대승불교 운동과 함께 출가교단은 물론 재가자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정토신앙은 인도에서 서역,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 일본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부터 정토신앙이 대중속에 뿌리내렸다. 원광법사가 처음으로 정토사상을 도입했다고 추정되고 있는데, 불세출의 고승인 원효대사, 율종을 청정하게 장엄한 자장율사,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 등 신라의 대표적인 고승들은 물론이고 의적(義寂), 태현(太賢), 경흥(景興) 등 수 많은 고승들에 의해 정토삼부경에 대한 번역과 각종 주석서가 집필되어 정토불교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였다.
신라 통일기에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릴 때 아미타불은 그 두려움을 없애 주었을 뿐만 아니라 죽은 자를 극락왕생 시킨다는 믿음으로 민간에 널리 퍼져 나갔으며 아울러 『삼국유사』에 전하는 많은 설화를 통해서도 당시 널리 유행했던 아미타신앙을 엿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의천(義天), 지눌(知訥), 요세(了世), 보우(普愚), 나옹(懶翁)선사 등과 선종을 위시하여 화엄종, 법상종, 천태종, 밀종 등 각 종파에서 염불은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 2018. 7.13 초하루법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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