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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3일기도 입재법회 봉행(12/20. 목)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12-20 14:58 조회2,2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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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일(목) 동지 3일기도 입재법회가 90여명의 대중들이 동참한 가운데 총무 동민스님의 법문으로 봉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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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희망의 등달기 구역은 약사전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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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공양 준비는 소하구에서.. 찬탄의 박수를 올립니다.^^)

동지의 유래와 의미

"묵은 액난 소멸하는 날" '작은 설'로 불리기도…불교에선 '참회의 날'

흔히 팥죽을 먹는 날로 인식되는 동지는 '작은 설'로 불릴 만큼 조상들이 중요하게 여긴 절기다. '아세(亞歲)'라고도 한다. 고대인들은 이 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여 축제를 벌이고 제사를 올렸다. 하지부터 길어지기 시작한 밤이 동지부터 짧아지기 시작하니 고대인들이 동지를 태양이 부활하는 날로 여긴 것도 무리는 아니다. 태양이 부활하는 날인 만큼 동지는 광명, 희망, 발전의 계기가 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국 주나라에서는 동지를 설로 삼기도 했으며, 역경의 복괘(復卦)도 동짓달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조상들도 동지를 희망의 출발선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거나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처럼 조상들은 동지를 새해 곧 희망의 출발선으로 생각했다. 동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팥죽이다. 팥죽은 시절식(時節食)의 하나이면서 귀신을 쫓는 신앙적인 뜻도 지니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은 날마다 분황사 새벽예불에 참석하였는데 선덕 여왕을 사모한 지귀(地鬼)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선덕 여왕에게 자신의 심정을 알렸으나 여왕은 예불이 끝난 후에 보자고 했다. 지귀라는 청년은 예불이 끝날 때까지를 기다리지 못해 심화(心火)로 죽었다. 그 후 그는 원귀(怨鬼)가 되어 신라 장안의 백성들을 괴롭혔다. 이 때 여왕은 대덕 스님들의 의견에 따라 동짓날 팥죽을 쑤어서 먹고 문간에 뿌렸다. 이로 인해 원귀의 행패는 없어지고 백성들은 민심이 안정이 되었는데 이후에 각 사찰에서는 동지를 맞아 삿귀를 쫓는 방편으로 팥죽을 먹게 되었다.

예부터 동지에는 관행으로 절에 동지불공을 드리러 간다. 동짓날 절에 가서 일년 동안 잘못한 일이 있으면 부처님 전에 참회하고, 새해에는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동지기도 때는 철야정근을 한다. 보통 밤 10시부터 석가모니불 정근에 들어가 다음날 아침예불 때까지 계속한다. 철야정근 후 새벽에 팥죽 또는 잣죽을 먹는다. 동지기도에는 수계식이 마련되기도 한다. 사찰에 따라서는 팥시루떡이나 팥을 넣은 호박죽과 동치미를 마련하기도 한다.
동지 팥죽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

신라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젊은 선비가 살았는데, 사람은 참으로 진실하였으나, 집안이 궁핍하였습니다. 어느날 과객이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고자 하여 쉬어가게 해주었더니, 다음날 새벽 길을 떠나기 앞서 그 과객은 선비에게 서로 친구가 되자고 하였습니다.

그 과객은 선비에게 종종 찾아와 벼를 심으라 하여 벼를 심었더니 벼 풍년이 들고, 고추를 심으라 하여 고추를 심으면 고추 농사가 풍년이 되는 등, 수년 간 많은 재산을 모으게 하여 그 선비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객은 늘 한밤중에 찾아와서는 날이 새기 전 닭이 울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주인인 선비는 재물은 남 부러울 것 없이 많이 모았으나, 세월이 갈수록 몸이 계속 야위어 가더니 마침내 몸이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병색이 너무나 심하게 짙어지자, 그 선비는 어느 스님에게 여쭈어 보았는데, 스님은 그 과객이 다시 찾아오면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라 하였습니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그 과객은 백마의 피를 가장 싫어한다 하였습니다.

젊은 선비는 스님의 말씀을 새겨 들은 이후 점점 그 과객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선비는 자기 집의 백마를 잡아 온 집안 구석구석 백마의 피를 뿌렸더니 그 동안 친절하던 과객이 도깨비로 변해 도망을 가면서 선비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 선비는 다시 건강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동지날이면 이 과객이 잊지 않고 찾아오는지라 젊은 선비가 스님께 해마다 백마를 잡아서 피를 바를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방도를 묻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렇다면 팥물이 백마의 피와 빛깔이 같으니 백마의 피 대신 팥죽을 쑤어 그것을 집에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동짓날 팥죽을 끓이게 된 유래라 하기도 합니다.

신라 선덕여왕은 날마다 분황사 새벽예불에 참석하였는데 선덕 여왕을 사모한 지귀(地鬼)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선덕 여왕에게 자신의 심정을 알렸으나 여왕은 예불이 끝난 후에 보자고 했다. 지귀라는 청년은 예불이 끝날 때까지를 기다리지 못해 심화(心火)로 죽었다. 그 후 그는 원귀(怨鬼)가 되어 신라 장안의 백성들을 괴롭혔다. 이 때 여왕은 대덕 스님들의 의견에 따라 동짓날 팥죽을 쑤어서 먹고 문간에 뿌렸다. 이로 인해 원귀의 행패는 없어지고 백성들은 민심이 안정이 되었는데 이후에 각 사찰에서는 동지를 맞아 삿귀를 쫓는 방편으로 팥죽을 먹게 되었다.

예부터 동지에는 관행으로 절에 동지불공을 드리러 간다. 동짓날 절에 가서 일년 동안 잘못한 일이 있으면 부처님 전에 참회하고, 새해에는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동지기도 때는 철야정근을 한다. 보통 밤 10시부터 석가모니불 정근에 들어가 다음날 아침예불 때까지 계속한다. 철야정근 후 새벽에 팥죽 또는 잣죽을 먹는다. 동지기도에는 수계식이 마련되기도 한다. 사찰에 따라서는 팥시루떡이나 팥을 넣은 호박죽과 동치미를 마련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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