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두스님 2째주 일요법회 봉행(2/10,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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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째주 일요법회가 130여분이 동석한 가운데 일요법회 식순과 정초기도 식순을 합해서 봉행되었습니다.
이날 "불교에서 바라본 도(道)와 음식의 상관관계"에 대한 법문을 해 주신 중흥사 주지이신 석두스님께서는, 맛이 있다,없다 라고 하는 괴로운 고(苦)를 일으키는 분별심을 가지지 말아야하며, 그날의 인연에 따라 감사히 받아들이라고 불교적인 관점에서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모두 이런 말씀 실천하며 살아가는 불자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 법문을 하고 계신 석두스님 -



- 점심공양 과일 준비중이신 문수2구 법등가족 -

- 점심공양 국수 준비 다 되었습니다.^^-

- 발원문낭독 하시는 하안구 금강 정견행보살님 -
불교에서 바라본 도(道)와 음식의 상관관계
중흥사 주지 석두스님
우리의 삶의 모습을 심리적인 면에서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절제와 중독.
음식과 감정이 절제의 대상인 반면, 운동과 긍정적인 생각은 중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반대로 한다는 점에 있다. 음식과 감정에는 제어하기 어려울 만큼 집착하는 중독을 보이는 반면, 운동과 긍정적인 생각은 아주 훌륭한 절제력을 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음식의 절제에 대해 말해보자.
불법 문중에서의 음식관은 ‘爲成道業’이다. 풀어 말하면 ‘도를 이루기 위해 공양을 한다’는 것이다. 제가 처음 출가해서 배운 것이 첫 번째가 음식의 미추를 따지지 말라는 것이었다. 즉, 맛으로 음식을 섭취해서는 도를 이루는 것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몸에 좋은 음식을 섭취해야 몸이 건강해지고,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과학이 바라보는 음식에 대한 시각이고, 보편적인 상식일 텐데 말이다. 이런 시각은 몸을 살아있는 유기적인 조화의 산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주 기계론적인 시각으로 보기 때문이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적 관점이 아니라, 유에 치우치고, 무에 치우친 편협된 시각인 것이다. 음식을 맛으로 먹는다는 것이 얼추 생각하면 아주 타탕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런 관점에는 매우 무서운 함정이 있다.
음식도 인연으로 해서 내가 만나는 것이다. 오늘은 좋은 음식이 내게 올 수도 있고, 내일은 맛이 없고 추한 음식이 내게 올 때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맛으로 먹던 자와 도를 이루려고 먹던 자와의 음식을 대하는 태도는 천지만큼 차이가 난다. 분별심 !!!!!!!!!!!!!
음식이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나의 무의식적이고 심층적인 사고를 지배하는 심의식을 반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지극히 단순하고 매일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이 분별의 행위가 나의 심층의 의식에 뿌리내리고, 그것은 보다 깊은 심연의식으로 자리잡아 나의 일상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나지 않는가?
두 번째, 음식에 대한 불교의 시각은 ‘절제’이다.
초기 불교에서 일종식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하루에 한 끼를 먹는 것,
이것은 모든 수행자가 지켜야 되는 불문율이었다. 그럼 왜 일종식을 했을까?
물론 인도의 기후적인 환경 탓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깊은 뜻은 절제와 감사의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중생들의 노동에 대한 수고로 수행자들은 먹을 수가 있다. 그리고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도업을 이룰 수 있다. 이 단순한 순환의 첫 걸음이 중생들이 기꺼이 희사하는 밥 한 끼에 있다는 것을 수행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은혜를 갚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오죽하면 옛 조사님네들은 밥 한 톨을 갚기 위해서는 다음 생에 천근의 무게로 갚아야 한다고 하셨다.
음식을 대하는 세 번째의 태도는 ‘음식의 연기관’이다.
이 쌀 한 톨이 이 밥상에 올라오기 까지를 연기적으로 관하는 태도로 수행해야 한다.
농부의 땀과 노고, 도정과 운반, 보관과 도매, 소매와 어머니의 수고로움,......
눈에 보이는 가장 단순한 기능적 역할만해도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이것은 눈으로 확인 가능한 것들이지만, 결국 쌀 한 톨은 비와 바람, 햇빛, 비옥한 토양, 이 보이지는 않지만 자연의 조화로운 수고로움이 없었다면 결코 내 입으로 들어올 수가 없는 것이었다.
연기론적으로 말한다면 ‘쌀 한 톨이 바로 도‘였던 것이다.
몸에 좋은 음식이 몸을 살찌울 수는 있어도 정신을 살 찌울 수는 없다. 음식을 적당히 절제할 때 정신은 더욱 건전한 삶의 지혜가 자라날 것이다.
올 해는 몸도 절제하고 마음도 절제하는 정신의 다이어트가 성공하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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