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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째주 일요법회 봉행(1/20,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1-20 15:03 조회2,1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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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째주 일요법회가 100여명의 대중들이 동참한 가운데 중흥사 주지 석두스님의 법문으로 여법하게 봉행되었습니다.

따스한 겨울바람이 춥지않게 느껴지는 일요일. 부처님 정법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금강 법우 형제분들의 발걸음이 어느때보다 가볍게 느껴지는 하루였네요...

오늘도 대웅전 앞마당은 차량으로 가득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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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으로 이끄는 것들

중흥사 주지 석두스님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분들은 이 주제에 대한 말이 나오면 심오하고 깊은 내용을 예상하고 지레 겁을 먹습니다. 또는 나와는 먼 그리고 뛰어난 제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무엇인가를 상상합니다. 난행과 고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일 거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전 상에 보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주 상식적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활 중에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 얻어지는 깨달음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맛지마 니까야] <마하순냐따경>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까족들이 있는 곳에 계셨는데 까삘라왓투의 니그로다 승원에 계셨다. 부처님은 낮 동안의 명상을 위해 사까족의 처소인 까라케마까로 가셨다. 그런데 그곳에는 많은 잠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생각하기를 ‘많은 잠자리가 여기 준비되어 있는데 많은 비구들이 여기에 머무는가? 라고 생각하셨다. 그때 아난다 존자와 많은 비구들은 사까족의 처소인 가따에서 법복을 만들고 있었다. 부처님은 저녁나절, 명상을 마치고 아난다 존자가 있는 가따로 가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 깔라케마까에 깔개와 잠자리가 많이 준비되어 있는데 거기에 많은 비구들이 머무는가?“
“예, 부처님, 거기에 많은 비구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지금은 가사를 만드는 때라서 그렇습니다.“
“아난다, 만일 비구가 동료들과의 모임을 즐기고, 모임의 즐거움에 몰두하고, 무리에서 즐기고, 무리에서 기쁨을 구한다면, 빛이 바래어 빛나지 않는다. 참으로 아난다, 이런 모임을 즐기고 무리의 즐거움에 빠져버린 사람이 벗어남의 더없는 기쁨,떠남의 더 없는 기쁨, 평화의 더 없는 기쁨, 깨달음의 더 없는 기쁨을 곤란이나 어려움 없이 뜻대로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기 여래에 의하여 발견된 머묾이 있다. 보이는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안으로 비어있음에 머무는 것을 발견했다. 만일 안으로 비어있는 마음에 머물기를 원한다면 마음을 차분히 안정시켜야 한다.

그리고 고요히 하고 골똘히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만일 말을 하고 싶어지면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천박스럽고, 상스럽고, 조잡하고, 유익하지 않다. 이런 이야기들은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지 않으며, 번뇌의 소별, 평화로움, 깨달음, 그리고 열반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러나 번뇌의 소멸에 대한 이야기, 해탈로 이끄는 이야기, 완전히 깨어있음, 평화로움, 깨달음, 열반으로 이끄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말하자면 욕심이 적음, 만족, 떠남, 세속으로부터 초연함, 정진, 계행, 삼매, 지혜, 해탈, 해탈의 앎과 봄과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이와 같은 이야기들을 나는 말할 것이다.‘라고 결심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온전히 깨어있게 된다.”이와같이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위의 일화를 통해서 우리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깨달음이라는 것이 저 하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의 현장에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외로움을 고독을 다른 것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독은 철저한 고독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음을 아는 것이 수행력이다. 사람도 대화도 모두 순간의 위안일 뿐이다. 침묵을 통해 안에서 나오는 빛을 볼 수 있는 자,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자야 말로 참으로 깨어 있는 자이며 공부인의 마음가짐인 것이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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