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재일법회 봉행(1/13, 일)
본문
부처님되신날을 기념하며.....
오늘은 부처님께서 오랜 고행끝에 깨달음을 얻으심을 기념하는 성도재일(음력12월8일)입니다. 일요법회와 함께 봉행된 이날 법회에는 100여명의 신도님들이 참석하여 총무 동민스님의 "성도재일의 의미"란 주제 법문으로 여법하게 봉행되었습니다.
총무스님은 지금 부터라도 내 가족 내 이웃을 사랑하고 완전한 이해를 하려고 하는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에 다가갈수 있는 길이라고 실천을 강조 하셨습니다.

- 법문을 해 주시는 총무 동민스님 -

- 발원문 낭독하시는 강영숙(공덕림)부회장 -


- 공양봉사는 문수2구 입니다 -
성도재일의 의미
총무 동민스님
성도절(成道節)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대각(大覺)또는 정각(正覺)을 이룬 음력12월8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불교에서는 이 날을 부처님오신날,열반절, 출가일과 더불어 불교의 4대 명절 가운데 하나로 손꼽는다.
그리하여 이 날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철야정진을 계속하게 된다. 선종(禪宗)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선종중심이라는 점에서 이 성도절은 더욱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선원및 강원에서는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행하며, 용맹정진(勇猛精進)이라 불리기도 한다. 부처님께서는 음력 12월8일 새벽 하늘에 금성이 반짝이고 있을 무렵 천지가 진동하며 태양과 달도 그 빛을 잃을 정도로 광명이 발하여 온 세상을 비추어 줄 때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석가 세존의 깨달음은 보리 또는 정각(正覺)이라고 불리며, 정각을 얻은 석가세존은 이로부터 '붓다(불타)' 즉 각성한 사람, 진리를 깨달은 사람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정각을 얻어 붓다가 된 것을 성도(成道)라고 부른다.
또한 석존이 성도할 때 앉아 있던 아쉬밧타수 '보리수' 앉은 자리는 '금강보좌'라고 불리게 되었다.
부처님의 생애 중 가장 뜻깊고 추념해야 할 4대 재일 중 부처님의 성도재일은 시기적으로 한 해를 끝내는 달 음력 12월 8일로 기나긴 겨울밤이다.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영화를 모두 버리고 29세때 출가하여 6년을 하루같이 설산수도 고행을 하시고 우주의 대진리를 깨달아 부처님이 되신 날이다. 이제 부처님께서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오직 대광명, 대환희, 대자비심만 충만하시고 우리 중생들에게 그 환한 길을 열어 보여 주시고 그 길로 가도록 인도해 주셨다.
부처님은 성도 직후에 범천의 권청으로 법을 전하기로 결심하고 '녹야원(鹿野苑)'에서 최초 5비구에게 사성제(四聖諦: 苦集滅道)의 진리를 전하며
전도선언을 하셨고, 이 5비구의 귀의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지속적으로 전할수 있는 승가의 원형이 형성됨을 의미하며, 이는 곧 불법승 삼보가 성립되는 것으로 불교라는 종교의 면모가 갖춰졌음을 의미한다.
부처님께서는 오랜기간 고행으로 극도로 쇠약하신 몸을 이끌고 '네란자라' 강에 이르러 목욕하신 뒤
'수자타' 소녀로부터 유미죽을 얻어 잡수시고 기운을 차리시고, '붓다가야' 보리수 아래 금강보좌에 앉으시면서 "내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결심하고 깊은 선정에 드신 지 7일째 새벽별을 보는 순간 위없는 깨달음의 진리에 이르셨고,
위대하신 성자 부처님(Buddha)이 되신 것이다.
부처님은 단순히 이 세상에 한번 왔다가 가신 분이 아니다. 모든 중생을 깨치게 하고자 서원을 세우시고 수억 겁을 거듭나며 수행을 닦은 분이다. 부처님은 모든 이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고통 속에 헤매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천상영화를 버리고 이 사바세계로 내려오셔서 성도하신 분이다.
보리수 아래서 깨달으신 연기(緣起)의 진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원인이 있으며, 원인으로 생기고,
원인으로 사라지고 소멸된다는 것이며, 인연법에 의하여 나고 죽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 ≪중아함경≫
현대인의 올바른 신행관은 먼저 믿고[信], 알고 이해하며[解], 즉 부처님의 바른 말씀[法]을 바로 믿고, 바르게 배우며, 바르게 실천하여[行], 증득[證]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실천으로 옮길 때 행복하고 즐거운 삶이 보장된다는 것을 믿자. 행복과 즐거움은 결코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족할 줄 알고 내적인 수행의 충만함이 진정한 행복과 나아가 열반·적정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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