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본래 부처임을 믿으라_일요법회(7/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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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1일(일) 3주차 일요법회가 100여명의 대중들이 동참한 가운데 금강정사 주지 벽암 지홍스님의 "자신이 본래 부처임을 믿으라"는 주제로 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남부지방의 태풍소식이 여기까지 미치지 못한것에 감사하며 아침부터 간간히 내리는 빗방울이 긴 가뭄속 단비로 여겨짐에 도리어 빗소식에 감사한 하루 ^^
오늘 법회에선 신규 임원 5명이 새롭게 임원부촉도 받으셨는데요... 대중들을 위해 봉사, 전법하는 임원이 되시길 기원해 봅니다.
오늘 법회소식, 사진으로 확인하세요 ^^
-주지 지홍스님의 법문_자신이 본래 부처임을 믿으라-
-거룩한 부처님께 예경합니다. (아래) 합창단 음성공양-
-신규 부촉임원, 왼쪽부터 9법등 도현수, 보문향보살님과 10법등 심행거사님, 정해심, 무아심 보살님^^-
-오늘도 법회이후 영단을 향해 무상계를 봉독합니다. 참고로 백중기도 일환으로 일요법회이후 영단 기도의식이 봉행되고 있습니다.-
-오늘 점심공양은 보현1구 식구분들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왼쪽 두번째가 법여 명등님.-
-도량을 가득매운 자동차와 함께 신도 대중들로 금강정사가 넘쳐나길 발원해 봅니다..^^-
자신이 본래 부처임을 믿으라.
금강정사 주지 벽암 지홍스님
자기가 본래 부처이며 천진한 자성이 사람마다 모두 다 갖추고 있으며 열반의 묘체가 개개인에게 모두 원만하게 이루어져 있는데 왜 다른 곳에서 부처를 구하려고 하느냐, 본래부터 스스로 부처를 갖추고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불교는 자기에게 불성이 있음을 자각하고 그 불성을 드러내는 것이 불교신앙의 핵심이며 목표입니다. 즉 내 마음 안에 부처가 있는데 그 부처를 찾아내어 믿는 것이 불교입니다. 내 마음 안에 있는 부처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다르지 아니하고 아미타 부처님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이 부처라고 하지만 그 마음이 전부가 아닙니다. 중생의 마음은 진심과 망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진심이 바로 부처이며 이는 망심 속에 깊이 쌓여 있습니다.
불교 유식唯識에서는 우리가 죽어서 윤회를 할 때 이 육신을 떠나가는 것은 바로 이 마음이며 이 마음을 아뢰아식(제8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이것을 마음이라고 하고 우리가 죽어서 이 마음이 육신에서 분리되면 영혼이라고 합니다. 아뢰아식에는 우리가 세세생생 살아오면서 경험한 갖가지 기억들이 업보란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중생은 바로 이 아뢰아식에 기억된 업(業)에 의하여 다른 생애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최근 유전공학에서 인간의 유전자를 해석한 결과 그가 생에 있어서 몇 살에 어떤 병을 앓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주최인 아뢰아식에 기억된 업에 의해서 다음 생애가 결정된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불교를 믿고 수행을 한다는 것은 아뢰아식 가운데 망심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행을 지극히 하는 경우 궁극에는 진심만 남게 되는데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열반이라고 합니다. 진심에 도달하게 되면 지혜와 자비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 경지에서는 하는 일 마다 옳고 모든 중생을 측은지심으로 보고 구제하게 됩니다. 진심의 경지를 반야심경에서는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是諸法空想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感)’과 같이 설명하고 있으며 의상스님의 법성게 역시 진심의 경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나의 마음속에 진심眞心이 있음을 믿고 이 불성은 망심 속에 숨어 있으므로 망심을 소멸시켜 불성을 온전히 드러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망심을 소멸시키는 것이 바로 불교에 있어서 구원입니다.
그러나 아직 수행의 정도가 얕고 신심이 부족한 사람의 경우 외부의 절대적인 부처님에게 의지하여 구원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에 불과할 뿐 자력의 길은 아닙니다.
이는 바른 믿음을 구하기 위한 길잡이에 불과합니다. 외부의 절대적인 구원자는 허상입니다. 허상을 통해서 실상을 습득하는 것도 중생이 취할 수 있는 믿음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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