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하루 신중기도 봉행(8/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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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8월 초하루법회가 8월30일(금) 150여명의 대중들이 동참한 가운데 여법하게 봉행되었습니다. 금강정사 초하루법회는 신중기도로 봉행되고 있는데요..법당안에 울려퍼지는 화엄성중 정근소리에 참석하신 불자님들의 신심을 확인하는듯 합니다.
신중단 퇴공 의식이후 주지스님(벽암 지홍스님)의 법문이 이어졌는데요.. 스님께서는 "법회를 준비하는 것 자체가 기도수행"임을 강조하시며 스님 및 법회의 원만봉행을 위해 수고해 주고 있는 모든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화창한 날씨와 함께 봉행된 초하루법회 모습... 사진으로 함께하세요...^^
-다함께 천수경을 합송합니다..^^-
-신중단 퇴공의식을 봉행합니다.-
-주지스님 법문 "불법(不法)인생에서 정법(正法) 인생으로"-
-초하루법회맞이 다도반 차나눔봉사, 공양실 혜주보살님께서 떡공양 보시해 주셨네요...^^-
-가피봉사자 왼쪽부터 관음성, 무애성, 무량지 보살님 ^^-
-오늘 점심공양은 소하구 식구분들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오른쪽 2번째가 소하구 명등 여실심 보살님....^^-
-차한잔의 여유-
불법(不法) 인생에서 정법(正法) 인생으로
금강정사 주지 벽암 지홍스님
자유자재한 인생이란?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결국 불교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정리될 수 있다고 한다면‘나는 누구인지’를 잘 파악해서‘나의 정체성’에 맞게 사는 것이 불교에서 이야기하는‘행복한 인생 = 자유자재한 인생’이다.
존재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존재의 실상에 맞게 사는 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자유자재한 인생 = 행복한 인생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존재의 실상은 뭔가?’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 여실지견如實知見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라는 불교단체에서 20여년 전부터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운동을 펼치고 있고 그것을 홍익대학교 안상수 선생님께서‘인드라망 무늬’로 시각화한 것이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림만 보면 대충 의미를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이 인드라망 무늬가 ‘존재의 참모습 = 나는 누구인가’라는 우리의 질문에 아주 쉽고 정확한 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말로 설명하자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고, 이렇듯 그물의 그물코처럼 존재하는 것이 ‘존재의 실상 = 나의 참모습’인 것이다. 이것을 옛 스승들은 ‘자타불일불이自他不一不二’라는 말로 표현해왔고 <아함경>에서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나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나라는 존재는 태생부터가 공동체생명인 것이다. 이렇게 존재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을 여실지견이라 하고, 그것을 다른 말로는 지혜라고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여실지견행如實知見行
이제 존재의 참모습을 보았으면 ‘본대로’ 살면 된다. 그것을 ‘여실지견행’이라 하고, 이것을 ‘자비’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비라는 것은 뭘 베푸는 행위이거나 공덕을 쌓기 위해 하는 행위 같은 것이 아니라 지혜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목마를 때 물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라고 한다면 물 마시는 행위 자체가 자비인 것이다. 이쯤 되면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지혜와 자비’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가?
행복한 삶을 꿈꾸는 그대에게
요즘 스포츠에서 세계적으로 HOT(?)한 한국의 스타를 꼽자면 축구의 손흥민과 야구의 류현진일 것이다. 음악적으로는 BTS를 꼽을 수 있다.
자, 그럼 어떻게 그들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을까? 탄탄한 기본기와 끊임없는 연습이다. 나는 불교에서는 ‘삼귀의 오계(계행)’ 자비행을 하는 것이 탐탄한 기본기와 끊임없는 연습, 즉 자유자재하고 행복한 삶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팔만대장경을 달달 외운다고 해도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이 없고, 계행(戒行: 맑고 향기로운 삶)을 살지 않고 자비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냥 컴퓨터를 켜서 검색하면 될 일이다.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이 지극하고 오계를 지키겠다는 서원이 확고한 사람이라면,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늘 그 마음과 서원을 살피고 참회하고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자유자재한 사람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나의 일상에서 부처님을 대하듯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 하는 일, 그것이 삼보에 귀의하고 계행을 실천하는 삶이고 그것을 통해서 존재의 실상에 맞는 지혜와 자비의 일상이 가능해지리라 생각한다.
불교는 깨쳐야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세 살 먹은 어린 아이에게도 지금 당장 실천하는 일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 않아서 안 되는 것이지 몰라서 못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린 이미 필요 이상을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할지. 말지. 선택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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