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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정사 소식

포살이 있는 일요법회(6/7,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6-07 21:06 조회2,2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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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부속품을 조합한 것을 세간에서 수레라 하는 것처럼 오온이 인연에 의해 화합한 것을 임시로 ‘나(我)’라고 부른다.” 총무 동민스님의 법문중의 말씀 한단락으로 포살이 있는 6월 첫째주 일요법회를 시작합니다.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하여 "청정사찰 실천지침"과 “생활속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마스크 착용, 손소독제 사용, 발열체크, 방문자 확인서명, 참배시 1미터 거리두기 등의 내용을 준수하며 일요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오늘은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법회중 보리수구 1법등 금강 현광명(임미화) 보살님과 보현구 12법등 바라밀 담연향(이혜경) 보살님의 임원 부촉장 전달식과 거사구의 가로연등 철거작업, 명등회의, 그리고 약사여래 부처님 안내표지판이 설치되었네요.^^


점점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마음이 여유를 잃어버릴수 있는 때입니다. 모두가 마음을 모아 코로나19 예방 수칙을 잘 준수하시고, 상호간에 한번 더 배려하여 웃음을 잃지 않는 불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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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살이 있는 6월 첫째주 일요법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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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극복과 치유를 위한 다함께 합송하는 "보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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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무 동민스님의 법문 "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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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지 벽암 지홍스님, 총무 동민스님, 유진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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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밀 합창단의 음성공양 "연꽃 피어오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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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상 오른쪽이 보리수구 1법등 금강 현광명(임미화)보살님, 왼쪽이 보현구 12법등 바라밀 담연향(이혜경) 보살님..주지스님과 임원 부촉 기념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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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촉장 전달후 기념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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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법회후 부처님오신날 봉축회향 겸 6차 명등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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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사전에 설치된 약사여래불 안내표지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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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로연등 철거 운력..거사구. 감사 찬탄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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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아 (無我)


          금강정사 총무 동민스님



이 경전은 동진(東晉)시대에 한역되었으나 역자가 누군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나선비구경」은 밀린다왕문경이라고도 하며, 팔리어로는 밀린다팡하라고 부른다. 이 경전은 2권본과 3권본이 있는데, 고려대장경에 실린 것은 2권본이다. 이 경의 명칭에 보이는 나선은 비구의 이름으로 원어는 나가세나다. 나가세나와 밀린다왕이 불교에 관해 토론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경전은 엄밀히 말하면 부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이 아니므로 경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경이 전하는 두 사람의 실제 대화 내용. 밀린다왕이 나가세나에게 물었다.

"존자여, 다시 태어난 사람과 죽어서 사라진 사람은 동일한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것입니까?"
"동일한 것도 다른 것도 아닙니다."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는 일찍이 갓난아이였고, 어린아이였고, 등에 업혀 있었습니다. 어릴 때의 그대와 어른이 된 지금의 그대가 같습니까?"
"아닙니다. 어릴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릅니다."
"만일 대왕이 그 어린아이가 아니었다면, 그대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또 선생님도 없었다는 것이 됩니다. 학문이나 계율이나 지혜도 배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왕이여, 잉태 후 첫 7일 동안의 어머니와 셋째 7일 동안의 어머니, 그리고 넷째 7일 동안의 어머니가 각각 다릅니까? 어릴 때의 어머니와 어른이 된 후의 어머니는 다른 존재일까요? 죄를 범한 자와 죄를 지은 벌로 손발이 잘린 자가 다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존자여,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내 자신은 등에 업힌 갓난아이 때의 나와 어른이 된 지금의 내가 같습니다. 모든 상태는 이 한 몸에 의하여 하나로 포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유를 들어 주십시오."
"어떤 사람이 등불을 켠다고 합시다. 그 등불은 밤새도록 탈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대왕이여, 초저녁에 타는 불꽃과 밤중에 타는 불꽃은 같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초저녁의 불꽃과 밤중의 불꽃과 새벽의 불꽃은 모두 제각기 다른 것일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불꽃은 똑같은 등불에서 밤새도록 탈 것이니까요."
"대왕이여, 인간이나 인간의 정신이 전전상속함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생하는 것과 멸하는 것은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재는 동일하지도 않고 상이하지도 않으면서 최종 단계의 의식으로 포섭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십시오."
"대왕이여, 그것은 우유가 변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짜낸 우유는 잠시 후엔 굳은 우유가 되고 나중에는 굳은 기름으로 변해갑니다. 만약 처음의 우유가 굳은 우유나 굳은 기름과 똑같다고 한다면 대왕은 그 말이 옳다고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우유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대왕이여, 인간이나 사물의 연속은 꼭 그와 같습니다. 생하는 것과 멸하는 것은 별개지만 서로 앞서거나 뒤지지 않고 동시에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존재는 동일하지도 않고 상이하지도 않으면서 최종 단계의 의식으로 포섭되는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존자여."
밀린다왕의 질문은 불교의 무아론과 윤회론 사이에 얼핏 보기에 존재하는 모순을 날카롭게 찔러 들어가고 있다. 윤회론이 성립하자면 생을 넘어 지속되는 영혼 같은 실체, 즉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러한 실체를 인정하는 것은 불교의 무아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나가세나는 환생한 사람과 과거에 죽었던 사람의 관계를 등불과 우유 등의 비유를 들어 그 둘은 동일한 것도 아니지만 또 완전히 별개의 것도 아님을 설명하고 있다.

"존자여, 무엇이 저 세상에 바뀌어 태어나는 것입니까?"
"명색(名色, 인간의 정신활동과 육체)이 바뀌어 태어나는 것입니다."
"현재의 명색이 저 세상에 바뀌어 태어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현재의 명색에 의해 선악의 업이 이루어지고, 그 업으로 인해 또 하나의 새로운 명색이 저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존자여, 만일 현재의 명색 그대로 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은 악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인간은 악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한, 인간은 악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해 불교는 나는 오온의 가화합(假和合)에 붙여진 명칭일 뿐이다. 오온은 색.수.상.행.식을 말한다. 색(色)은 육체를 말하며, 수(受)는 좋고 싫다는 등의 느낌, 상(想)은 이미지와 개념을 형성하고 언설을 일으키는 작용, 행(行)은 의지작용, 식(識)은 마음을 그 자체를 가리킨다. 결국 오온은 육체와 정신을 다섯으로 세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색이 육체이며 나머지 넷은 정신에 해당한다. ‘가화합 假和合’ 은 인연에 의해 임시적으로 가(假) 조화롭게 결합되어 있다. 화합(和合)의 뜻이다.

‘나’라고 불리는 것의 진상은 오온의 가화합일 뿐이다. 다시 말해 색.수.상.행.식이라는 다섯요소가 인연에 의해 임시적으로 조화롭게 결합되어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인연이 다하면 다섯 요소의 화합도 다하고 ‘나’도 없어진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다섯 요소 가운데 영원하며 변치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 몸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기쁨도 잠깐이며 영원한 미움도 없다.
이 오온이 가화합되어 있는 상태를 편의상 ‘나’라고 부를 뿐이다. 따라서 영원히 머무르며 변치않는, 즉 상주불변常住不變 의 ‘나’가 있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그와같은 상주불변의 ‘나’는 없다는 것을 ‘무아(無我)’ 라고 한다.

『잡아함경』에 수레와 ‘나’의 대비를 통해 무아(無我)를 이해시키고자 하는 다음과 같은 게송이 나온다.
“여러 부속품을 조합한 것을 세간에서 수레라 하는 것처럼 오온이 인연에 의해 화합한 것을 임시로 ‘나(我)’라고 부른다.”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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