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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정사 소식

가섭스님의 행원여행(7/26,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7-26 15:00 조회2,9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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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 사이로 오랫만에 햇살과 바람 내음마저 상쾌한 일요일 아침, 가섭스님(금강정사 도감, 성남 한솔종합사회복지관장)의 행원여행이 있는 넷째주 일요법회가 열렸습니다.
가섭스님의 법문 중에 “불교에서의 믿음은 그저 믿음에 그치지 아니하고, 그것을 실천하는데 있다.”는 말씀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실천할 수 있는 불자가 되길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법회 사회는 지근거사님, 집전은 대각거사님, ppt 보현덕 보살님, 그리고 발원문 낭독에 담연향 보살님, 보현구의 점심공양 나눔과 발열체크, 차량운행에 지승거사님 그리고 거사구의 주차관리였습니다.
여러분,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개인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시고, 상호간의 배려가 넘칠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잃지 마시기를 기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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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섭스님의 행원여행. 매월 4째주 일요법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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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함께 합송하는 보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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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대한 후회도, 미래에 대한 염려도 아닌 지금 현재 내마음을 살피고 일으키는 마음이 서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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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심-귀의-찬탄-참회-서원-회향] 신행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가섭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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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중기도기간 평일 동참이 어려운 신도님들을 위하여 영가 기도가 일요법회 공지사항 이후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총무 동민스님과 유진스님께서 인례해 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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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님들께 감사함을 담아 잔을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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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실천입니다.

금강정사 도감 가섭스님


불교를 수행의 종교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근기에 따라 수행방법은 달라야 합니다. 마치 물그릇의 크기에 따라 물의 양이 다르고, 용기의 용도에 따라 그 쓰임이 다른 것과 같은 것입니다. 

  [치문(緇門)]에서는 이에 대하여 ‘중생들의 근기와 욕구와 성품이 다르기에 만약 한 가지로 그것을 논한다면 뜻을 얻지 못할까 염려되도다.(蓋衆生之根欲性이 殊라, 若一以論之인댄 恐非得旨也로다)’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팔만사천법문은 중생의 해탈과 열반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서도 애인중생(哀愍衆生)위한 방편이라는 다양한 빛깔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의 기도와 수행방법을 논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제시되는 말은 신(信)-해(解)-행(行)-증(證)이라는 네 단계입니다. 즉 믿고, 이해하여, 실행하고, 증득한다는 것입니다. 또는 신행과정으로 보면 발심(發心)-귀의(歸依)-찬탄(讚嘆)-참회(懺悔)-서원(誓願)-회향(廻向)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종종 불교를 배우는 분들 가운데서도 ‘불교는 실천과 증득의 가르침이지 믿음을 강조하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불교는 믿음으로 시작하여 증득(깨달음)으로 완성하는 가르침입니다. 또한 개인의 발심으로 시작해 공동체적으로 회향하는 실천의 종교입니다.

[심지관경(心地觀經)]에서는 이러한 믿음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손이 없으면 보물이 가득한 산에 들어가서도 보물을 주워 올 수 없는 것처럼 믿음의 손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설령 삼보(三寶)를 만난다 하여도 얻을 것이 없다.

불법승 삼보에 대한 귀의는 그저 예경이 아니라 기도와 수행을 시작하는 불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계이며 그 핵심은 믿음에 있습니다.

진귀한 보배가 넘치는 산에 들어갔어도 만약 손이 없다면 한 조각도 가지고 나올 수 없듯이, 믿음이 없다면 거룩한 삼보가 눈앞에 나타나 일러주어도 한 구절의 가르침도 받아 지닐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불교에서의 믿음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불교는 다른 종교와 같이 어떤 절대적인 초월자나 창조주 유일신을 믿고 숭배하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마명보살이 지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는 믿음의 대상과 내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근본을 믿는 것이니, 진여법(眞如法)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둘째는 부처님께 한량없는 공덕이 있음을 믿는 것이니, 항상 친근하고 공양공경하며 선근(善根)을 일으켜 일체지(一切智)를 구하는 것이다.
셋째는 가르침에 큰 이익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니, 온갖 바라밀(波羅密)을 마음에 두고 수행하는 것이다.
넷째는 승가가 능히 올바르게 스스로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함을 믿는 것이니,여러 보살들을 항상 친근하기를 좋아하고 배우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기신론]에 따른다면 신심의 대상은 크게 진여법, 불, 법, 승의 네 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앞서 말씀드린 불법승 삼보에 진여법이 추가된 것인데, 여기서 진여법이란 부처님께서 발견하신 진리 그 자체라는 의미도 있지만, 자세히는 중생들 각자에게 갖추어진 진여불성(眞如佛性), 즉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신론]의 글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불교에서의 믿음은 그저 믿음에 그치지 아니하고, 그것을 실천하는데 방점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공덕과 가르침의 이익과 승가의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믿으면서도, 스스로 선근을 심고 일체지를 구할 뿐만 아니라 바라밀을 배우고 실천해 “마하반야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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