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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정사 소식

7월 세째주 일요법회(7/19,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7-19 13:57 조회2,4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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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쏟아붓는 장대비에 신도님들 오시는 법회 길이 험할까 걱정이 되어 내다보고 또 내다보면서 애꿎은 하늘만 흘겨봅니다. 부랴부랴 비설거지를 끝낼 즈음 빗소리도 잦아들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이 옅은 색으로 바뀝니다.


총무 동민스님의 명상은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어진 법문은 [백중 천도 49일 동안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평일 백중기도에 참여치 못하는 신도님들을 위해 일요법회 이후 영가기도를 올렸습니다.

오늘 일요법회도 "생활속 거리두기"에 따라 발열체크, 마스크 착용, 손소독제 사용, 참배시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여법하게 봉행되었는데요. 법회 사회는 도안거사님, 집전은 청여거사님, ppt 도향 거사님, 그리고 발원문 낭독 무량위 보살님이었습니다. 점심공양배식과 발열체크는 보현구, 주차는 거사구, 차량운행은 정관 거사님께서 봉사해 주셨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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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정사 총무 동민스님의 법문이 있는 세째주 일요법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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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세째주 일요법회를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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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함께 합송하는 보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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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의 법문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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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중 천도 49일간의 마음가짐] 에 대한 법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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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창단의 음성공양 : 풀잎에 구르는 이슬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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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님께 감사함을 담아 절을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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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중기도에 참여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일요법회시에 무상계 독송 및 영가분들께 잔을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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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천도 49일 마음가짐

금강정사 총무 동민스님

薦度齋(천도재) ①祭(제) ②齋(재)
우리 중생들은,

오온을 "나"로 여긴다. 오온은 크게 물질과 정신으로 나뉘어진다.
​1. 색[色] - 몸, 물질
2. 수[受] - 느낌
3. 상[想] - 생각
4. 행[行] - 행함
5. 식[識] - 앎
▶ 물질 - 색[色] : 지수화풍 4대
▶ 정신 – 수상행식[受想行識]
▷ 지수화풍 4대
1) 지대 : 땅의 요소 - 죽고 나면 흙으로 돌아갈 것들 : 뼈/살/머리카락/내장 등등
2) 수대 : 물의 요소 - 몸 속의 모든 물 : 눈물/콧물/지방/피속의 수분 등등
3) 화대 : 불의 요소 - 몸의 열기, 따듯함.
4) 풍대 : 바람의 요소 - 호흡, 기(氣)의 운행....

《숫타니파타》의 화살경은 어떤 사람이 자식을 잃고 7일간이나 음식을 먹지 않고 슬퍼하는 것을 보고 부처님이 그를 찾아가 그의 슬픔을 달래주며 설한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목숨은 예측할 수 없고 언제까지 살지 알 수도 없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에도 괴로움은 언제나 그림자처럼 뒤따른다. 살아 있는 존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늙으면 이윽고 죽음이 오나니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것들의 운명이다. 익은 과일은 빨리 떨어진다. 이처럼 살아 있는 것들은 죽지 않을 수 없나니 그들에게는 언제나 죽음의 검은 공포가 있다.

제 아무리 잘 구워낸 도자기라도 마침내는 모두 깨어져 버리고 말 듯 인간의 목숨 또한 이와 같은 것. 젊은이도, 늙은이도, 어리석은 자도, 현명한 자도, 죽음 앞에는 모두 무릎 꿇는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사람들은 죽음에 붙잡혀서 저 세상으로 가고 있지만 그러나 아버지도 그 아들을 구할 수 없고 친척도 그 친척을 구할 수 없다. 보라, 친척들이 지켜보며 슬퍼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 가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죽음과 늙음의 해를 입는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이를 잘 알아서 무작정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온 곳도 모르고 가는 곳도 모른다. 탄생과 죽음의 이 양 끝을 모르면서 왜 그리 구슬피 울고만 있는가. 어리석음에 붙잡혀 자신만을 해치고 있는 사람이 슬피 우는 것으로서 무슨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면 현명한 이도 또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슬피 우는 것만이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울면 울수록 거기엔 괴로움만 따를 뿐, 몸은 점점더 야위어 간다. 슬퍼하면 그럴수록 몸은 야위고 추하게 되나니 운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슬퍼하고만 있는 것은 아무런 이익이 없다. 언제까지나 슬픔에 젖어 있으면 괴로움만이 더할 뿐이다. 죽은 사람을 위해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은 가는 슬픔을 또다시 부르는 짓이다.

보라, 사람들은 자기가 지은 그 업(業)에 따라 죽어가고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죽음의 포로가 되어 저렇듯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구나.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지만 그러나 그 결과는 처음 뜻과는 전혀 다르다. 사라져 가는 것의 운명은 모두 이와 같으니 이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우리가 비록 백 년을 넘게 산다 해도 마침내 친지들을 떠나서 이 생명을 버려야 할 날이 온다.

그러므로 훌륭한 이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사람이 죽어 없어지는 것을 보면 그는 이미 우리의 힘이 미칠 수 없는 곳으로 갔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 슬픔을 거둬야 한다. 집에 붙은 불을 물로 꺼버리듯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은 슬픔이 이는 것을 재빨리 꺼버린다. 바람이 솜을 저 멀리멀리 날려 보내듯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번뇌의 화살을 뽑아 버려야 한다. 비탄과 고뇌와 불만에 찬 그 화살을.

이 화살을 뽑아 버린 사람은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는 일 없이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슬픔을 극복한 다음 더없는 저 축복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경전 《숫타니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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